2016년 11월 13일 일요일

문제학의 경로

오늘은 어제 선택/타협의 결과이고 내일은 오늘의 선택/타협에 의해 만들어진다.
문제학도 마찬가지. 재미있는 것은 그때는 의도한 선택이 아니었는데 결과는 의도한 것처럼 되었다는 것. 경로의존성일까? 아니면 매몰비용? 아니면 필요한 것만 기억하는 인지 선택의 오류?


문제학은 쌍용양회가 서류 전형이 아니라 필기시험을 먼저 했다는 우연에서 시작된다. 당시는 모든 기업이 서류전형 후 선발된 학생들이 필기시험을 보았다. 그래서 지방대 출신에 성적까지 나쁜 학생에게는 응시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140대 1의 그 시험을 통과해(자화자찬^-^; 진실은 내가 공부했던 내용들이 대부분 나왔다는 운이 좋았던 것) 대기업에서 직장생활 시작.

첫월급을 부모님께 드리는 효도란 선택이 아니라 8bit PC를 샀다는 이기적 선택을 한 것이 동기 중 유일하게 컴퓨터를 다룰 수 있다는 결과를 만들었고, 동해 공장에 출장 온 연구소의 최롱 부장님이 나에게 연구소행을 제안, 공장이 아니라 연구소란 선택을 한 것이 공부로 먹고 사는 삶이란 결과를 만들었다. 아이러니는 대학 졸업때까지 제일 하기 싫은 일이 공부.

연구소에서 DB 전문가에서 정보전문가로 성장해 가는데, 문제는 DB 전문가로서 초기 2년간 일이 단순 반복작업으로 하기 싫었다는 것. 2년째 망년회때 회사를 그만 둔다는 선택을 하려고 못 마시는 술을 취하도록 깽판을 쳤는데 평소에 사이가 나빴던 채대리의 조언이 다운로딩 되지 않고, 프리센싱 했다는 우연이 발생해 태도를 바꾼다는 선택을 한 것.

전자통신연구소가 옆에 있었고, 노준식 과장님의 동문들이 연구소 도서관에 인맥을 구축하고 있어 자료를 무상으로 빌릴 수 있었다는 것이 우연. 그 후 3년간 연간 5,000편이 넘는 자료를 읽으면서 공부해 정보전문가가 되었다는 결과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상헌씨라는 귀인을 만나 SRD라는 정보영역에 종사해  문자, 숫자, 이미지 DB 전체를 경험한 국내 유일의 정보 전문가라는 결과를 얻었다.

고등학교때 한시가 좋아 한자를 스스로 공부한다는 선택이 일본어를 쉽게 배울 수 있는 결과로 작용하고, 삼성종합기술원이라는 직장에서 정보센터에 들어온 500여종의 잡지를 목차는 다 보고 있다는 선택이 트리즈와 만남이라는 우연을 만들었다. 그래서 정보전문가가 아니라 트리즈로 정점에서 배를 갈아탄다는 선택이 문제학을 만드는 시점이 되었다.
또한 석사때 유행이었던 인공지능 중 기계번역이라는 선택을 한 것도 러시아어로 작성된 트리즈 자료를 읽을 수 있다는 결과를 가져왔다.

임원장은 영국 여왕 훈장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공학자였지만 관념의 경험 밖에 가지고 있지 않아 내 제안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실무 경험을 가진 손욱원장께서 내 제안을 기대 이상으로 받아주셨던 것이 한국에 트리즈를 정착한다는 결과를 가져왔다. 스파코프스키 박사나 나르붓 박사 중에서 실무 능력이 뛰어난 스파코프스키 박사를 선택한 것도 신의 한수. 역시 공학은 관념이 아니라 실무의 학문이라는 것.

또 하나 소중한 인연은 이재환 사장님으로 문제학 마지막 퍼즐인 소망론을 입수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신 것.
이상한 것은 소망이 모든 문제의 출발점인데 실제로는 거의 연구가 되어있지 않았다. 왜냐하면 지난 5,000년간 소망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죄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기노구니야에서 소망론을 만났지만 너무 비싼 책 값때문에 내 능력으로는 구입이 어려웠다.

그리고 문제학의 마지막 조각인 운(우연)이 완성된 것은 강의를 펑크낸 어떤 기업때문.
간절히 원해 선약된 다른 강의도 취소하고 받아준 강의를 전날 내가 확인할때까지 취소되었다는 연락조차 하지 않았던 기업의 담당자. 화를 삭히면서 메일을 확인했는데 우연히 들어온 내일 출발하는 70%할인 항공권. 그리고 갑작스러운 출장에서 만난 책.
세상사 모순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렇게 결과에서 거꾸로 추적하면 결국 과거의 선택과 인연, 우연에 의해 오늘이 만들어진 것이 명백해 진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